Tuesday, June 28, 2011

[yoonji's kitchen] 할라피뇨 쏙쏙 튜나 샌드위치


우리에게 친숙한 참치에 매콤상콤한 할라피뇨가 쏙쏙 들어간 샌드위치입니다.

* 재료

빵:치아바타
속:참치한통,할라피뇨(유리병에 담아 파는 절임 할라피뇨),디종 머스타드,계란
    루꼴라,후추,올리브오일

*만들기

1.루꼴라는 물기를 없앤 후 올리브 오일에 살짝 버무려주세요.후추도 약간 뿌려주세요.

2.참치캔을 열어 숟가락으로 눌러 기름기를 쫙 빼고 할라피뇨는 잘게 썰어 보울에 담지요.
   머스타드와 마요네즈 약간 넣어 잘 버무려주세요.후추도 솔솔 뿌려주세요.
   계란은 끓는 물에 10분이상 완숙으로 삶아주세요.(식힐때 계란을 살살 굴려주면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슬라이스 해주세요.

3.치아바타 빵을 프라이팬에 살짝 굽고 반을 갈라주세요.

4.빵 안에 루꼴라를 깔고 참치를 듬뿍 올려주세요.맨 위에는 이쁜 노른자가 보이는
   삶은 달걀 슬라이스를 두개 올려주세요.

  짠~간단하죠?

Friday, June 24, 2011

아이폰이 주는 즐거움 1

아이폰으로 듣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 빠져있다.
김영하,하면 '오빠가 돌아왔다'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한창 읽으며
끽끽 거렸던 그 여름이 생각난다.(동시에 끈적끈적한 날씨와 노을지는  박물관 그리고 이촌역이 생각난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어딘지 통속적이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한국영화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김영하라는 사람을 상상해보면 담배냄새에 쩔어 당구에 빠져있는 한량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연히 듣게된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들으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작가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낮은 톤의 젠틀한 목소리,작가니까 당연하겠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듣고있자면 마치 tv가 없던 시절 라디오를 붙들며 낄낄거리는 느낌이다. 특히 김영하가 들려주는 책이야기가 내가 읽었던 책이며 같은 문장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았을때 받는 공감의 희열 !
특히 장 그르니에의 '섬'의 본문보다 뛰어난 카뮈의 서문을 들려줄때 김영하가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요즘 발견한 아이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목소리만 들으니 지하철에서 동영상보며 혼자웃는 우스운 꼴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Friday, June 17, 2011

정리

흩어져 있는 기록을 추려모으다.

2년 전,3년전..지난날의 기록을 돌아보니 나는 항상 고민하고 작게 방황하며
한편으론 감사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며 살았던 것 같다.
주요 키워드는 항상 '지금 이 순간'이었던 걸 보니.
(사실 난 어느영화로 유명해진 카르페디엠이란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현재를 사는것은 명백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기록이란 연필이나 펜으로 줄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애쓰며 종이 위에 쓰는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키보드를 감칠맛나게 두들기는 이 행위가 당연하게 기록으로 받아들여졌다.
언젠가 나의 아들딸이나 손주손녀에겐 손때묻은 종이일기장을 물려주리라는 바램은
꽤 많은 끈기를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항상 그 가죽일기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위안한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기록의 회수가 줄어드는 걸 보니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보다.
생각도 글도 짧아진 느낌이다.세월이 흘러도 똑같은 양과 질의 감성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아,오늘밤은 참 좋다.
타닥타닥 쾌감을 주는 키보드로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며 정리하는 느낌.
마치 작가가 된 기분이다.

밤하늘에 달이 보였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어느늦은밤(2010.6.29)



<Christo and Jean Claude>
#
대지예술가라는 크리스토와 쟌 클로드 부부는 매우 닮아있다.
저 유쾌한 머리색과 순수한 웃음을 봐
어제부터 계속 그들이 센트럴파크에 세웠다는 저 펄럭이는 오렌지색이 머리속에 아른아른거렸다.딱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색이다.
이 부부예술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아,겨우 기억난 단어'크리스토'..검색해보니 베니건스의 몬테크리스토만 잔뜩 나온다.
결국 찾아낸 이 부부,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지는 장대한 스케일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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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다.다시 잠을 청하려니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
태양은 나를 한없이 밝게만드고 달은 나를 한없이 차분하게 만든다.해와 달은 나에게 음양의 조화를 선사한다.달빛아래 차분한 이 밤,그리운 옛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싶은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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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에 잠길때면 나는 언제나 혼자걸었던 어느 순간의 공기 한줌을 마신다.걷기도했고 뛰고있기도 했던 음악과 함께 혼자였던 그 순간,삶에 대한 외로움과 고마움을 내뱉었던 한숨과 선선한 공기,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있다.내 마음의 양분이 되는..

#
특히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수없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안개에 잠긴 새벽,바다보다 더 드넓은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그 항구.펠리칸보다 더 클것같은 오리새인가? 이 또한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는 새가 걸어다니는 갈대숲을 지났다.음악소리가 들린다.누군가 모래위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새벽이라그런지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꿈을 꾸는 듯하다.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바이올린,연주자의 뒷모습.나는 박수라도 쳐야할걸 그랬다.

어느순간_3호선에서(2010.6.23)

지금 지하철 3호선에 앉아 한강을 건너는 이 순간은 일년 전 5월의 어느 하루를 닮아있다.그날은 스승의 날이었던 것 같다.겉돌지 않는 담백한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내 귀엔 팻 매스니의 한 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담백한 만남의 여운을 음미하여 음악에 취해있었다.그날 일기장에는 훗날 나의 독자에게 그 음악을 꼭 들어볼 것을 권유하는 문장이 쓰여졌다.
순간의 기억은 이렇게 마음에 울려퍼졌던 음악과 함께 기억된다.청명한 밤하늘과 물위에서 반짝이던 빛때문이었을까,그밤이 유난히 떠오른다.오늘 이 순간을 종이 위에 풀어놓고 언젠가 이 하루를 또다시 떠오르겠지.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의 퍼레이드! 기억나지 않는다면 아마 지금 들리는 또 다른 이 음악 그 소년의 마들렌같은 기억의 매개체가 되어주겠지.
                                                        

무제,반성(2010.5.6)

많이 읽고,사색하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읽고 사색하고 쓴 것을 삶에 구체적인 생활에 녹여내는 일이다.
읽고 사색하고 쓰는 일은 개개인의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까워지는
노력의 과정일뿐 삶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참된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여도 그를 미화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또한 다독과 인격을 동일시 할 수 없는 이유이다.생각과 글과 행동의 괴리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글을 통해 나타난 미화된 글쓴이가 아닌 글을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려하는,이루고자하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나 또한 내가 끄적거린 문장들을 통해 본 '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속에서 행동하는 나'의 심한 괴리를 느낄때 약간의 자괴감에 빠진다.거기다 난 아직 읽은 것도 생각한것도 쓴것도 부족하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2010.5.6)

하루키는 그의 단편집의 한 에세이에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에 대해 말한다.하루키의 '작지만 확고한 행복'은 장롱 속에 잘 접어둔 팬츠(?)였다.
그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고된 하루에 맞선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작지만 확고한 행복은 무엇일까?영화 아멜리에의 앞부분에 나온 아멜리에의 아빠,엄마에 대한 묘사가 생각난다.그녀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한다 등등을 재밌게 나열한..아멜리에의 엄마는 목욕할때 손발가락이 쭈글쭈글해지는 걸 싫어했다.

기운이 충만한 달을 올려다보는 것(반짝반짝 별도 좋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귀에 꽂고 동호대교를 건너는 지하철 안
(거기에 반짝이는 강 표면이 있다면 금상첨화)

운동화를 신고 땅 위에 붙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것같은 느낌
(구두에서 해방된 그 느낌이란!)

오늘은 이 세가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2009.9.19)

한동안 뜸했던 알랭드보통이 새 책을 들고 찾아왔다.
제목 또한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만약 일을 하기 전이었다면,
일은 철저히 이성적인 영역이라 생각하여 기쁨,슬픔이라는 감정의 상태로 표현하는게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기쁨과 슬픔이라는 표현은 내게 무척 와닿는다.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는 일에 어떠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버텨내긴 힘들다

어쨋든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파헤쳐보고 싶었다는,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일이,직업이,직장이 곧 한 사람의 인격이자 정체성이 되는 것에는
동조하고 싶지 않지만-직업이 한 인간의 정체성이 되기에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이 다양하다.)

알랭드보통은 비스켓공장,부두,직업상담소,화가,회계사 등 다양한 직업의 현장에서 글을 썼다.객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관찰자로서 일의 다양한 면모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우선은 목적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인내와 배움의 과정
그리고 힘들지만 없어선 안되는 것-어떤 친구의 표현을 빌려 필요악.

행복의 조건(2009.5.5)

애드가 앨런 포와 행복의 네가지 조건

1)야외의 생활
2)한 존재의 사랑
3)일체의 야망을 멀리하기
4)창조

<작가수첩1>,알베르카뮈 中

홍윤지와 행복의 네가지 조건

1)햇빛,바다,나무..자연이 있는 생활
2)한 존재의 사랑,나만의 Soulmate
3)최소한의 문화적욕구는 충족할 수 있는 욕심없는 삶
4)글쓰기,요리,공예 등을 통한 창의적인

김점선(2009.3.28)

작년 언젠가 광화문에서 김전선씨인 줄 알고 쫒아간 적이 있었다.
유쾌한 괴짜화가이자 작가 김전선씨.
언젠가 한번쯤 보고 싶었던 분이었는데..얼마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그림과 유쾌하고 낙관적인 글을
보며 존경해왔는데..

마지막 자서전을 보니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낙천적이었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 내 삶의 궤적인 것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살 때도 매일 같이 수양하면서 담백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죽음도 삶의 마지막 부분일 뿐 삶과 동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저 초지일관해야한다"

무제(2009.3.10)

한두살씩 나이를 먹고 벌써 스물일곱이 되면서 나는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영향으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이십대후반의 여자라는 사실에 죄없는 죄책감을 느껴야하는 것 같다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여자에게 나이란 중요하다.적어도 이 사회에선 말이다.
이십대후반이 되고 삼십이 넘으면 여자로서의 가치를 잃을까하는 두려움,불안감 등은 사회의 분위기 탓,아니 '여자는 이십대만이 여자다'라는 사회의 진리아닌 진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해보면 개인의 탓도 상당할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고하지만 자신을 한 인간으로서,여성으로서 본질을 들여다보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오직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춰지는 특정나이대의 여성으로서의 자기모습에 치중한 나머지 나이가 들면 소용없는 가치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영원한 젊음이란 없고 그의 말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잡으려하는 것과 같다

공평하게도 나이란 모든 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 현실에 가장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이 젊음의 순간을
즐기되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좀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어떻게하면 제대로 잘 늙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멋진 할머니 손자손녀에게 자랑스러운 할머니가 되려면 무얼 생각하고 무얼 해야할지를 말이다.

영원한 젊음은 없지만 영원한 가치는 있을테니 말이다.

어느 오후(2009.2.17)

나의 오후
점심을 먹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연구소로 향하는 택시 안
바깥공기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상기라도 시키려는듯 차다.찬바람이 불지만 하늘은 참 맑다.차라리 흐린하늘의 온풍보다는 추워도 맑은 파란색을 띤 하늘이 맘에 든다는 생각을 한다.창으로 들어오는 반짝거리는 햇빛이 정답다.맑은 공기와 맑은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정답게 한다.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싶은 충동이 들지만 지루한 회의를
대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귀로 흘러들어오는 제임스블런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감미롭다.

지난 어느겨울날 평일오후

나른한 평일오후의 햇살은 언제가 있었던 어느 평일오후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행하고 있는 평일 낮,
통의동 골목을 여유롭게 걸었다.겨울이었지만 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고 오후 햇살이 오히려 따스하게 감싸주었다.과거의 흔적을 담은
낡은 집들이 골목마다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었다.
'난 여기에 살고싶다.'
드문드문 보이는 카페는 세련되었지만 사람냄새를 풍긴다.정이 간다.청담동일대의 여느 트렌디한 카페들이 절대 가질수없는 느낌이다.
지나가다 우연히 헌책방을 발견한다.작은 책방에서 책냄새를 맡으며 구경한다.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르바이트생이 넘기는 책장소리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뿐.매우 평온한 순간이다.
윤대녕의 소설 한권을 발견한다.거의 새책인데 이천삼백원이다.큰 수확을 한 기분이다.
심플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평일 오후의 카페엔 손님이 별로 없다.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주문한다.갈색 부직포로 손수만든
슬리브가 곱다.코코아는 적당히 달작지근하니 맛이 좋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소설에 빠져있는 사이 여러자리가 채워졌다 비워진다.코코아도 어느새 비워졌다.그리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간다.약속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토끼모양의 수제쵸코렛을 하나 사들고 해가지는 효자동을 뒤로하며 광화문 도심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꿈
작은꿈이란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언제가 있을 어느날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효자동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도서관이란
이름은 거창하겠고 개인책방이라고 할까.이왕이면 해변의카프카에 나오는 마을도서관정도의 규모였음 좋겠지만..최소한 민음사의 문학전집과사진이 멋진 요리책,아트북이 꽉차있는 책방의 주인이다.
산책나온 동네주민,광화문직장인들이 잠깐 들러 책도 일고 담소도 나눈다.내가 만든 밀크티와 쿠키를 맛본다.
책방은 조용하고 평온하지만 라디오와 음악소리가 책방의 공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책방에 앉아 가끔 손님을 맞으며 글을 쓴다.
세계여행한 이야기,지난날의 추억,사람,동물,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까지...맑은 햇살이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하여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나의밤
세상은 생각보다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감정의 극대화는 부끄러울정도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세상은 나말고도 복잡하고 바쁜 곳이다.그래도 어쨌든 내안의 작은 방황들은 성장,아니 성숙의 양분이 되리라 믿는다.그래서 긍정적인 방황은 반갑다.
그분의 말대로 감정과 감성의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기도하다.
감성은 풍부하지만 차가운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는 감정과 감성이 별개인데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풍부한 감성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싶다.
모두가 잠을 청하는 겨울밤,반짝거리는 도시의 불빛은 한강위에서 더욱 빛난다.인공적이지만 한낮의 햇살만큼 아름답다.
낮에 들었던 제임스블런트의 목소리가 더욱 감미롭다.

인간실격(2009.1.3)

작심삼일로 끝나는 첫해결심은 떠벌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새해 해야할 몇가지 일들을 머리속으로 우물우물 씹고만 있다가
개중 하나인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차도에서 날라오는 매연을 감수할 만큼 오늘의 밤거리는 상쾌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엔 매연처럼 뿌옇던 마음이 오히려 정화된 느낌이라할까.(동시에 매일 새벽 해안가를 뛰던 내 모습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걷고 뛰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미루어왔던 그러나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씩 생각해본다.
얼마전 읽었던 '인간실격'이라는 책제목이 머리속을 맴돈다.
운전면허시험장이 인간자격시험장이라면 나는 보도블럭을 넘어가는 어이없는 감점을 내지는 않더라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별거아닌듯하지만 어쩌면 가장중요한 실수로 야금야금 점수를 깎아먹고
결국은 당신은 "실격"이라는 빨간도장을 쿵 받지는 않을까,
범죄자,알콜중독자와 같은 극단적인 실수를 하는 자만이 인간실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어쩌면 우리중 상당수가 인간실격인지도 모른다.나도 포함.어쩌면 다자이오사무는 자신이 인간실격임을 고백함을 동시에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 아닐까.
여전히 새해계획은 자기반성의 무기한연장으로 지연되어 맘에드는 다이어리에 거창하게 나열되지 못하고 머리속에 떠다니고 있다.
두시간동안 빌딩숲을 걷고 뛰며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이 끝나지 않는다. 그 끝에 새로운 진부한 결심하나.새해엔 인간이 되어보자.
적어도 넌 실격이야,도장 쿵은 면해야하지 않겠어,
적어도 글을쓰는 손이 부끄럽지는 않아야하지 않겠어,

공책(2008)

지금과 달리 초등학생 시절 나는 지나칠 정도로 공책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글씨를 쓰다 볼펜똥이 묻었거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글자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곤 했는데
종이를 찢고 난 공책모서리 안은 들쑥날쑥 지저분해진다.
그럼 손으로 직접 뜯어보고 칼로 이리저리쑤셔보지만
종이는 너덜너덜 더 지저분해지며 상태가 악화된다.
결국엔 모서리의 올이 풀려 여러장이 한꺼번에 떨어져나가는데
겨우 몇 글자에 심각해져 공책 한권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패닉상태에 빠져드는데
초등학생에게 공책 한권은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생각하는
공책 한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물건이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공책 한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여러번 그러다보면
모서리 안을 칼로 들쑤시며 억지로 공책을 깔끔하게 만들려고 할때
바로지금 그만두고 공책을 덮는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공책에 손을 대며
결국엔 또 패닉상태에 빠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행복은 결국 나의 선택이고 마음가짐이란 걸
알면서도 공책을 덮어버리지 못하고 계속 칼로 상처를 내었다.

글씨 몇 글자 이쁘게 쓰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도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모든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해져보는 건 어떨까.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내 머리속은 항상 복잡하기만 하다.

아까운 공책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In Japan(2008)

난 지금 일본의 후지오카라는 시골마을에 안착했다.

시골은 누구에게나 고향의 느낌을 선사한다.
아마도 자연 안에서 느낄수 있는 안도감과 평온함때문이 아닐까.
자연은 나약한 인간을 품고
인간은 자연 안에서 모태와 같은 향수를 느낀다.

내 고향은 도회지만,무척이나 도시를 좋아하는 나지만
그동안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보다.
이 시골의 공기와 고요함이 여느때 보다 평온하게 느껴진다.

찜통과 같은 더위에 에어컨없는 마루바닥에 누워있지만
맥주와 약간의 와인, Damien rice,
그리고 지금 이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믿는
나의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소월길에서(2008)

그런 곳이 있다.

익숙한 곳도 아니고 자주 가본 적도 없지만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곳 말이다.

남산 소월길을 따라 쭉 걸어올라다가보면
후암동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그런 곳이다.

나도 모르게 털석 앉아 언덕길을 내려다본다.

양쪽에 곧게 서서 밤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이
언덕길에 낭만을 보태준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한아름 사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즐겁다.
목욕탕 바구니를 틀고 총총 걸어가는 아줌마의 표정이 귀엽다.
말 안듣는 강아지를 힘겹게 끌고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힘겹다.
'마라톤 *분*초에 완주목표'라는 종이를 등에 붙힌 할아버지의
뜀박질이 희망차다.
막 연애하기 시작한 듯 수줍은 대학생 남녀의 풍경이 풋풋하다.
막 남산을 정복하고 내려온듯한 아저씨의 걸음이 보람차다.

이렇게 사람들이 오고가는 언덕길을 바라보면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경자(2008)

                             탱고가 흐르는 황혼/천경자/1978

2007년 어느 봄날

미술관은 평일 낮에 가야 한산하다는 사실을 핑계삼아 
경제학수업을 까먹고 시립미술관에 갔다.

이름이 알려진 외국화가의 전시는 언제나 붐비더라,
역시 마그리트전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로 붐볐다.

그림을 겨우 보고 엽서 몇장을 사는 쏠쏠한 재미를 맛본 후
카페로 걸어가다 천경자화백의 상설전시실을 우연히 들어갔다.

마티스와 고갱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이국적이고 원색적인 색채와
여성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름다움에 가슴에 진동이 울렸다.

해외여행이 흔치않던 시절 그녀가 여행했던 수많은 나라가
표시된 지도와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쓴 기행서적에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어쩌면 난 그녀와 같은 삶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박경리씨도 그녀에 대해 시를 썼더라

                                     <천경자>
                                  박경리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은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이다.


그 날 내게 영감을 준건 마그리트가 아닌 천경자화백이었다.



마음의 섬(2008)

2005년.내가 살던 곳에서 북쭉으로 쭉 올라가면
언덕 진 곳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Suntset hill park.
이름그대로 해가 지는 언덕이다.공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아
민망하지만 해가 지는 광경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가라 앉으며 펼쳐지는
정열적인 붉은 그라데이션의 노을은
오로지 자연만이 뽐낼수 있는 총천연의 색이이었다.

지고 있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충실히 의무를 다하고
건실한 하루를 끝내는 듯한 태양의 숭고함이 느껴졌다.
때가 되면 나타났다 때가 되면 질 줄 아는 한결같음..

언덕 밑으로 내려다보면 저 멀리 태평양으로 이어져
왠지 배만 타면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puget sound가 있었다.
그 끝없는 바다를 내려다볼때마다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물 위에는 수많은 작은 배들이 하루를 끝내고 돌아와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춘다. 고요함 속에서 차분히.
마치 저 세계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는 듯이.
멀리서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배의 행렬도
하나의 풍경이고 그림이었다.

나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혼자 그 곳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그곳에 데려가야지 생각했다.

한때 나만의 아지트이자 안식처였던 그 곳.
적어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그러고 보니 사진 한장 찍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맘 한켠엔 Sunset hill이...  

그립다.

행복한 눈물(2008)


그대,행복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유난히 피곤한 아침, 늦잠을 자고
허겁지겁 서두르는 출근길이었다.

돈아까워 쓰라린 마음을 가다듬고 택시를 잡아 탄다.
'아저씨 꼭 빨리 가주세요'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아주 밝게 인사하는 아저씨는 대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보통의 택시아저씨들과는 조금 다르다.

'걱정마시고 제가 쓴 시 하나 읽어보세요'
시가 적힌 종이 가득한 봉투에서 한장 꺼내준다.

제목은 '행복한 눈물'

사랑하는 딸에게 어버이날에 받은 패랭이 꽃을 받고
가슴이 뭉클하여 행복한 눈물을 흘렸단다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니 놀라워
이렇게 적어 시를 썼다며 열심히 얘기하는 아저씨.

평소 뜬구름잡는 소리를 좋아하는 나지만
정시에 도착하지 못할까 불안한 나는
'누가 저런 사연하나 없겠어
휴..말많은 아저씨가 걸렸군'
하며 대강대강 들었다.
얼굴은 굳은채 눈으론 계속 시계만 쳐다보며.

근데 듣다보니 열심히 자기가 쓴 시에 대해 얘기하는 아저씨,
정말 행복해보였다.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출근길 교통에도
정말 행복해보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단순해 보이는 아저씨의 체험은
놀라운 것이었다.
행복해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나는 눈물이 그토록 많은 나는
행복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만한 일은 어쩌면 많았을지도 모른다.
알게모르게 우린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보내며 살고 있을테니깐
우리도모르게 스쳐보내며 살고있을테니깐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분명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일거고
행복하게 사는게 뭔지 아는 사람일 거다.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아는 단순한
아니,어쩌면 가장 중요한게 뭔지 아는 지혜로운 사람..

86억에 구입한 '행복한 눈물'을 가진 그녀는
행복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을까

한 재벌총수의 부인이 비자금으로 구입한 '행복의 눈물'

그리고
택시아저씨가 딸에게 받은 꽃을 보고 흘린 '행복의 눈물'

'사랑하는 딸
어버이날에 선물로 패랭이 꽃 한분을 가져왔지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참 예쁘다 패랭이 꽃들,아 방실방실 웃고 있네
그런데 어느새 딸의 얼굴들이 되어 웃고 있으며
귀여운 딸들의 한 목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오래오래사세요 사랑해요 웃어대는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하여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며 눈물이 흐르는데
그때 내 마음의 느낌이 '행복한 눈물'하는 소리를 분명들었다
내가 행복한 눈물의 그림은 못 그려도 한번 글로 써 보려고 하다가
못 썼거든,참 신기하고 놀라운 그 날 체험한데로 이렇게 써 놓았다'
written by 택시아저씨

그대,행복의 눈물 흘려본 적 있나요

무제

 삶이 나를 습관적이고 고루한 지점으로 끌어가려할 때  나는 그걸 등지고 걸어가려 애쓴다.
 보이지 않는 불가항의 억센 공기를 뚫고.
 머리와 생각은 습관적인 습관에 발맞추어 줄지라도
 가슴과 영혼은 꿋꿋히 뒤돌아 걸어간다.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달,두번째

매일 밤 걸으며 혹은 뛰며 상념에 젖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땐 한강변이었는데,달빛아래 반짝거리는 강물은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켰다.
지금 걷는 냇가는 밤이면 안개가 잔뜩 껴 사물이 흐릿흐릿해보이는데 이 모습 또한 인상주의 화가의 평범한 풍경화같다.
오늘은 보름달이 떴다.
아니 아직 보름달이 되기 전이다. 바느질할때 쓰는 쵸크 모양의 달이다.정확한 원을 그리는 보름달보다 왠지 정감이 간다.어느 한쪽이 어눌하게 누그러진 모습이.
그 옆에 단 한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다.마치 집 뒷산에 사는 토끼 눈 옆에 있는 점같다.
달은 언제나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멀리서보면 저렇게 작지만 내가 어딜가든 달은 날 감싸주고 있다.좌우를 살펴도 한결같이 나를 비춰주고 있다. 차를 타고 가면 나를 따라온다.
지금쯤 이 지구 어딘선가 누군가 나처럼 달을 올려다보고 있을까?
공기에 물질뿐만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면
같은 시간 달을 올려다보며 동경하는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따뜻한 공감을 느낄텐데.
이렇게 안개낀 달밤아래서 걷다보면 세상의 온 감성이 나를 적셔버린 것같다.삶에 대한 모든 감정이 내게 녹아드는 것같다.낮이 되면 부끄러울지경의 감성에 빠져버리는 내 자신이 유치해보인다.
그렇지만 이성과 습관적인 생활로 가득찬 낮 시간에 이런 안개낀달밤으로 3분정도 바뀌는 시간이 있었음 좋겠단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초조함,지루함 습관적임,소시민적인 범인에서 벗어난 무위의 상태를 가능케 하는..

하루가 끝날 무렵, 매일 달 보기를 잊지 않는 이유는
달이 지닌 한결같음과 적당한 변화때문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위에 한결같음을 머금고
달은 그렇게 있다.

그러나 달은 안일함을 거부하고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눈썹같은 초승달이 반달이 되고 거기에 살이 보태져
반원과 원 사이의 과도기를 거쳐 보름달이 된다.
그리고 그 충만함을 한껏 내뿜는다.

밤하늘의 외로운 섬,달.
해와는 다른 어둠과 신비로움을 담은 달.

누군가 말했듯이 달은 우리에게 영원히 미지의 영역이였으면.

달 바라보는 건 내 하루의 작지만 꽉 찬 충만함이다

나무


나무처럼 단순해지고싶다

계절에 꽃잎을 흘려보내고
묵묵히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추운바람이 볼을 스쳐도
이게 내가 흘려보내야할 바람이므로
무던히도 우직하게
그렇게 서 있는 나무이고 싶다.

나무는 심지어 그 바람의 차가움마저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