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달리 초등학생 시절 나는 지나칠 정도로 공책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글씨를 쓰다 볼펜똥이 묻었거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글자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곤 했는데
종이를 찢고 난 공책모서리 안은 들쑥날쑥 지저분해진다.
그럼 손으로 직접 뜯어보고 칼로 이리저리쑤셔보지만
종이는 너덜너덜 더 지저분해지며 상태가 악화된다.
결국엔 모서리의 올이 풀려 여러장이 한꺼번에 떨어져나가는데
겨우 몇 글자에 심각해져 공책 한권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패닉상태에 빠져드는데
초등학생에게 공책 한권은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생각하는
공책 한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물건이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공책 한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여러번 그러다보면
모서리 안을 칼로 들쑤시며 억지로 공책을 깔끔하게 만들려고 할때
바로지금 그만두고 공책을 덮는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공책에 손을 대며
결국엔 또 패닉상태에 빠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행복은 결국 나의 선택이고 마음가짐이란 걸
알면서도 공책을 덮어버리지 못하고 계속 칼로 상처를 내었다.
글씨 몇 글자 이쁘게 쓰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도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모든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해져보는 건 어떨까.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내 머리속은 항상 복잡하기만 하다.
아까운 공책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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