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7, 2011

공책(2008)

지금과 달리 초등학생 시절 나는 지나칠 정도로 공책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글씨를 쓰다 볼펜똥이 묻었거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글자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곤 했는데
종이를 찢고 난 공책모서리 안은 들쑥날쑥 지저분해진다.
그럼 손으로 직접 뜯어보고 칼로 이리저리쑤셔보지만
종이는 너덜너덜 더 지저분해지며 상태가 악화된다.
결국엔 모서리의 올이 풀려 여러장이 한꺼번에 떨어져나가는데
겨우 몇 글자에 심각해져 공책 한권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패닉상태에 빠져드는데
초등학생에게 공책 한권은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생각하는
공책 한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물건이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공책 한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여러번 그러다보면
모서리 안을 칼로 들쑤시며 억지로 공책을 깔끔하게 만들려고 할때
바로지금 그만두고 공책을 덮는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공책에 손을 대며
결국엔 또 패닉상태에 빠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행복은 결국 나의 선택이고 마음가짐이란 걸
알면서도 공책을 덮어버리지 못하고 계속 칼로 상처를 내었다.

글씨 몇 글자 이쁘게 쓰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도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모든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해져보는 건 어떨까.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내 머리속은 항상 복잡하기만 하다.

아까운 공책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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