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0, 2011

LEE UFAN. 2011.12.18

일요일 오전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은 알차고 따뜻해 추운 겨울공기마저 녹여버렸다.

심플함의 진수를 보여줄거라 기대하고 찾아간 이우환의 Dialogue전.
역시 그림은 실제로 봐야 더 와닿는다.

수십번을 다시하고 수백만원을 버려가며 완성했다는 이우환의 그림들

 흰 바탕위에 붓질 하나.
 얼핏보면 단순하다.
 예술이 뭡니까? 저런건 누구나 할수있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할수도 있는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 붓질은 섬세한 질감과 그라데이션으로 
 수백번은 시도한 끝에 완성했을것같은 완벽함을 보여준다.

 갤러리 입구에 쓰여진 관장의 글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예술도 인생과 같다,자아를 찾아가는 혼란기를 거쳐 성숙한 안정기에 이르듯이
 한 작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이었다.

 수많은 번뇌와 고민,방황을 거쳐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그리고 그 끝에 남길 수 있는
 단순하지만 섬세한 붓질 하나. 인생도 그림과 같은가보다.

 세익스피어가 쓰고 스티브잡스가 인용했던 한 문장이 생각난다.
 Simplicity is the ultimate of sophistication. (단순함은 정교함의 궁극이다)

장욱진과 함께 이우환은 내가 동경하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또 하나의 작가다.

Wednesday, November 30, 2011

간절함 재치 진정성 배려 감동 공감

헛된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Sunday, November 27, 2011

'아이들은 미래를 물고늘어지고 나이든 사람은 과거를 물고늘어진다.
현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미래나 과거를 만들어낸다.
노인들의 미래는 과거다.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지금'을 통해서인데,많은 사람들은 시간의 굴레에 묶여 있어야
편안하리만큼 무력하다.과거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새는 울고 꽃은 핀다.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정현종시집 노트1975 중

언젠가 to do리스트에 정현종 시인에게 편지를 쓰기를 올렸던 것이 생각난다.
그분이 쓰신 시,번역한 글 모두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왔고
현존하는 분이시기에 활자를 통한 공감의 기쁨을 전하는 소위 팬레터를
쓰고 싶었다.아직도 실행되지 않고 있다.막상 쓰려고 펜을 든 적도 있다.
뭔가 멋진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고민하다 관두고 말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정현종시집을 읽으며 마음에 잔잔한 돌을 던져본다.

나의 유치한(?)기준인 서른 전엔 꼭 편지를 쓸 수 있기를.

Saturday, November 26, 2011

요즘의 나는 약간은 게을러졌고 고민따위는 많이 줄었으며
순간순간 즐겁게 사는게 인생의 답인냥 허허 웃어버린다.
매사에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기도 하고 감정의 동요에 대한
의연함을 가지려고도 한다.이게 내가 성장하고 있는것이길 바래본다.

나태함으로의 변질은 방지하고 적절한 번뇌와 고뇌를 생활 속에
포함시키자.

Tuesday, November 22, 2011

겨울냄새가 난다.차가운 공기에서,내 가슴 속에서.
춥고 시려도 싫지 않은 이 느낌,내가 좋아하는 차가운 바람에 눈물 핑돌기의 계절.

음악을 귀에 꽂고 잠을 청하는 조용한 시간
시간에 몸을 맡기고 흘려보냈던 날들과 다른 꿈틀거림이 느껴진다.심장의 열기.

오늘은 어떤 꿈을 꾸고 내일은 어떤 하루를 맞이하게 될까.
현재의 즐김과 내일에 대한 기대.삶의 묘미에 나를 맡겨본다.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게 될 내일을 고대하며.
여전히 감성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Monday, November 14, 2011

은옥언니가 강력히 추천한 박범신의 '은교'

'하얀 신작로 하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있는
단순함이 아름다움을 보여준 문장

Saturday, October 15, 2011

Orange

알고보면 섬세한,사연있는 오렌지였다.

10월10일의 프레임

3호터널 사거리에 서 있다. 뒤로는 남산이 어두운 녹색 숨을 내뿜고 눈 앞으론 망막을 자극하는 오렌지색 불빛이 쏟아진다.유럽의 어느 장인이 만들었을 통가죽이 자랑스럽게 진열된 쇼윈도 앞에서,인생의 prelude를 지낸 한 사람은 귀에 들리는 카뮈의 서문을 들으며 자연과 일상을 통해 절대와 신성을 얘기하고자하는 그 모방 불가능한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음에 조용한 감탄과 행운을 느낀다.
한마디 한마디 자신을 채우는 꽉찬 열매와 같은 글귀에 스승 그르니에에 대한 카뮈의 찬미에 홀로 공감을 표한다.

그르니에의 '섬'에대한 알베르카뮈의 서문 중 몇구절..

'그러나 그르니에라면 이러한 어조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는 오히려 한마리 고양이의 죽음,어떤 백정의 병,꽃의 향기,지나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버린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모두가 여기서는 어떤 비길데없는 섬세함과 힘으로 암시되어 있다.정확하면서도 꿈꾸는 듯한 저 가벼운 언어는 음악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그 언어는 빠르게 흐르지만 그 메아리는 긴 여운을 남긴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 본 후 겨우 그 처음 몇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에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돌아가고 싶다.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는 저 남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겁게 부러워한다.'

Tuesday, October 4, 2011

누운지 세시간째.옅은 잠에 들었다가 깨 뒤척이고 생각하고.
문득 눈이 쏟아지는 삼청동 길을 걷고 싶다.대신 삼청동은 상점이라곤
수와래라는 파스타집(아니 스파게티집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하나 뿐인
대략 8년전 쯤의 한적함이었음 좋겠다.
금방 눈앞에 다가올 겨울엔 함박눈을 푸짐하게 선사받고 싶다.

Monday, September 26, 2011

TIm Eitel

전시를 찾아보다  알게 된 팀 아이텔
에드워드 하퍼를 연상시키는 현대인의 고독을 닮은 느낌
어두운 느낌의 그림을 선호하진 않지만 이 작가의 그림은
차분하고,공감되며 무엇보다 색감이 맘에 든다.
@갤러리현대














Friday, September 23, 2011

Finding 'Red'


                                                            강렬하고 매력적인
                                             

Happy to meet you


                                                                  Georgio Morandi
                                                   단아한 정물화가 왠지 맘이 간다
                                                                     Georgia O'keeffe
                                                너무 사랑하는 그녀의 그림 두 점을 발견하다
Mark Rothko
다른 컬러들도 모두 보고싶다.

MOMA Rooftop



여행 중에 가진 혼자만의 시간
루프탑에 혼자 앉아 햇빛을 쐬고 푸른 하늘 감상하기

SF MOMA



                                                           화이트 컬러의 심플한 내부

Golden Gate Bridge

China Town,SF



North Beach,SF

 이탈리아 동네 North Beach
 그 날은 이탈리아 장터가 열렸고 작은 공연도 하고 있었다.신나는 음악.
멋진 모자들이 가득한 Goorin Brothers.

Friday, September 16, 2011

마음을 잘 정리해보고자했으나 친구와 가족과 함께 했기에 혼자만의 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샌프란시스코 모마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보고
루프탑에 올라가 햇빛을 쬐었던 혼자의 시간이 그만큼 더 달콤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여러가지 일들은 간단하게 정리 될 일은 아니지만서도
요즘의 나는 툭 치면 눈물이 날 것같은 그래서 노래라도 들을라치면 눈물부터
나는 것이다.그냥 서른즈음에 맞는 사춘기라고 해두자.

여전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지 않고 여러 면에서 부족한 나를 보면서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또 무작정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며 어리광을 부리는 미성숙된 나를 보면서
그러면서 뭔가 마음 속에 울컥함을 느끼면서

오늘은 결심 아닌 결심을 했다.오로지 순간에 충실하겠다는.
그 어느 산맥에 산다는 하루살이 꽃처럼.

Thursday, September 15, 2011

sleepness in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의 잠못 이루는 밤의 단상

집 앞 가게에서 싸게 산 와인을 홀짝마시는데 재미가 들렸나보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내 입맛에는 사실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이 잘 맞는다.
평소엔 보지 않는 개그콘서트를 찾아보며 깔깔 웃어댄다.
얼굴이 붓도록 잠을 자고..

어떤 글귀가 생각난다.
The pursuit of happiness is the sourse of all happiness.

Monday, September 5, 2011

맨드라미

회사 지하 꽃가게에서 맨드라미를 볼 때마다 너무 이쁘다했는데
어느날 지선이가 나를 끌고가며 꽃을 사주고싶다고 한다.
붉은 맨드라미 한다발, 고운 지선이의 마음이 내 방과도 잘 어울린다. :)

sky

오늘의 하늘은 참 가을다웠다.파란바탕과 하얀구름의 적절한 조화,
세상의 맑음은 모두 끌어안은 듯한 여유.
저 아래 세상엔 여전히 복잡함과 어려움이 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

엘이이아줌마의 블로그

오래전 이민을 떠나 미국에 살고있는 엄마 친구의 블로그에 갔다.
내가 엘에이 명희아줌마라 부르던.
초등학교 때인가 처음 미국 엘에이에 놀러갔을때 아줌마와 가족을 처음 만났다
열두살 내 기억에 새겨진 아줌마의 모습은 꽃이었다.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담은
원색의 밝은 꽃.물질적으로 그리 풍부하진 않았던 이민생활과 암투병을 했던 남편
그리고 약간의 장애를(이런 표현을 용서해주세요)가진 쌍둥이아들..
그치만 씩씩했던 두 딸도 있었고 집마당에 선인장이며 갖가지 식물과 꽃들을 키우며
그야말로 작은행복을 누리며 밝게 사는 아줌마였다.그리고 문학소녀였다.
세월이 지나고 아줌마의 소식을 가끔 들었으며 당신의 딸이(초등학교 때 만났던
커트머리에 동양적인 외모가매력적이었던 나에게는 매우 컸던 언니)또 두 딸을
낳았으며 이년전이었던가 한국에 왔을때 잠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아줌마의 블로그.
문학소녀처럼 꾸준히 글을 쓰고 정답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먼 이국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여유와 나무와 꽃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블로그를  잊고 있었다가 오늘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나 들어왔다.
오늘,어제,일년전...글을 거슬러 올라가 일년전 여름.그 때 그 글엔 엄마의이야기가 있었다.
멀리있는 친구에게 모진말을 했다는 아줌마의 미안함과 그리움.아들을 보러 샌프란에 온 그 친구를샌프란의 어느 꽃길에서 재회하며 자신이 친구에게 모진 말을 했음에 대한 진정어린 미안함과 자신이 이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는 그 글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고맙기도 하고 친구에 대한 그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딸로서 엄마에게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 친구만큼 엄마를 아껴줬을까 하는 생각과
나의 얕고 얕음에 대한 부끄러움..
최근 내 마음 속에서 힘들게 자리 잡았던 어느부분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Sunday, August 28, 2011

무제

유난히 잠에 많은 시간을 쏟은 주말을 지낸 후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밤.
잠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직장인이 겪는 월요일의 공포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날 놀려오는 피로도,사실 대수롭지 않다.어차피 아침이 오면 낮도 오고
저녁도 오고 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갈테니 말이다.
바깥공기에선 가을냄새가 나고 하늘속에도 가을이 보인다.청명한 새 계절이 반갑기도
하지만 요즘은 어째 어린시절의 향수와 유수같은 세월에 대한 푸근히면서도 시린 감정이 든다.
사실 적절한 단어를 찾는게 어렵다.
오늘도 그랬다.쉬다가 문득 어렸을때 엄마가 사준 카라멜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잘 보관해두었던 기억이 났다.엄마가 사준 카라멜이라 그 카라멜껍질을 쉽게
밖에서 버릴수 없었다.그래서 엄마가 빨래를 할때 내 호주머니에선 자주색 새콤달콤 껍데기가
뭉치로 나오곤 했다.우습게 표현된 소중한 것에 대한 애착이랄까.
꿈을 향해 먼 길을 떠나는 지인의 연락을 오랜만에 받고 매우 더웠던 어느 여름 방황했던 타인의
청춘이 떠오르며 세월의 흐름에 웃음을 짓는다.그러고보니 그 시절 나는 생전 처음 사춘기를
겪으며 내 자신과 세상에 홀로 반항하고 있었다.딱 그 나이에 어울리는 조금은 유치해보이는
방식으로.전혜린과 김영하를 즐겨 읽던 그 여름.

소리없는 열병을 앓은 것같은 이십대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고 갈색느낌나는 새 계절을 맞이하려
한다.가을에 잘 익은 과일처럼 성숙하고 내 안의 모순들은 낙엽 떨어지듯이 흘려보내고
더 나은 인격을 다지고 싶다.가을과 그 뒤에 따라오는 겨울에 대한 예의이자 다짐이다.

Sunday, August 21, 2011

Dear my son & daughter.

I just want to tell you that the happinese is the state of your mind.
now I think I'm the happiest person in this world. It doesn't mean that
all situations and conditions are perfect.The point is that I do try to
feel happy at every single moments and I thank to God that I still live
like this.I'm so proud of myself that I already know the answer of life.

I've been wondered if i could be a good mother.
Today I decided to live more truly to be the Hero for my kids.

Love,yoonji

Sunday, July 17, 2011

무제

살아있는 장미와 가짜 장미를 유리병안에 놓고 구별하는 방법은
꽃에 상처가 있는지 보는 것이라고 한다.
살면서 누구나있기 마련인 상처를 대하는 낙관적인 방법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수없는 스물아홉의 해를 보내고 있다.
나는 모든것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아야할 필요가 있다.
장미의 가시와 상처와 고독이 행복을 돋보이게 할수도 있음을.

Saturday, July 2, 2011

어느 늦은 비내리는 밤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오늘하루 나를 감싸았던 끈적임을 씻겨주는 듯하다.
시원하다.오늘하루도 이렇게 흘러간다.삶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그대로이기도 하다.갖가지 모습과 느낌과 감정들을 담고 언제나 그랬듯이 흘러가는 하루들.
어두운 방안에 귀에 흘러들려오는 유희열의 연주곡이 유난히 마음을 울린다.
이럴때 음악은 삶을 미화하는 멋진 작용을 한다.음악의 힘이란..
얼굴이 유난히 매력적인 젊은 프랑스여작가의 소설은 명랑함과 낭만의 기분을
선사해주는데..아,이순간 나는 작게 외쳐본다.
이런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이겠소.

6일전 기록했던 메모가 생각난다.
오늘 아침 조금도 움직일 수 있는 틈도 없이 꽉찬 지하철안,숨이 막힌다.
그러나 그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평소 자주 듣지 않는 매우 정적인 클래식 연주곡을 그 순간 듣는 거다.
브람스가 울려퍼지고 잠시나마 사강이 떠오르고 해저의 조개가 생각난다.
그 순간 숨막히는 북적임과 평화로운 고요의 상극적인 면이
묘한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고요한 밤 내 귀로 음악이 울려퍼지는 순간처럼.

Tuesday, June 28, 2011

[yoonji's kitchen] 할라피뇨 쏙쏙 튜나 샌드위치


우리에게 친숙한 참치에 매콤상콤한 할라피뇨가 쏙쏙 들어간 샌드위치입니다.

* 재료

빵:치아바타
속:참치한통,할라피뇨(유리병에 담아 파는 절임 할라피뇨),디종 머스타드,계란
    루꼴라,후추,올리브오일

*만들기

1.루꼴라는 물기를 없앤 후 올리브 오일에 살짝 버무려주세요.후추도 약간 뿌려주세요.

2.참치캔을 열어 숟가락으로 눌러 기름기를 쫙 빼고 할라피뇨는 잘게 썰어 보울에 담지요.
   머스타드와 마요네즈 약간 넣어 잘 버무려주세요.후추도 솔솔 뿌려주세요.
   계란은 끓는 물에 10분이상 완숙으로 삶아주세요.(식힐때 계란을 살살 굴려주면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슬라이스 해주세요.

3.치아바타 빵을 프라이팬에 살짝 굽고 반을 갈라주세요.

4.빵 안에 루꼴라를 깔고 참치를 듬뿍 올려주세요.맨 위에는 이쁜 노른자가 보이는
   삶은 달걀 슬라이스를 두개 올려주세요.

  짠~간단하죠?

Friday, June 24, 2011

아이폰이 주는 즐거움 1

아이폰으로 듣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 빠져있다.
김영하,하면 '오빠가 돌아왔다'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한창 읽으며
끽끽 거렸던 그 여름이 생각난다.(동시에 끈적끈적한 날씨와 노을지는  박물관 그리고 이촌역이 생각난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어딘지 통속적이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한국영화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김영하라는 사람을 상상해보면 담배냄새에 쩔어 당구에 빠져있는 한량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연히 듣게된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들으면서 막연히 상상했던 작가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낮은 톤의 젠틀한 목소리,작가니까 당연하겠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듣고있자면 마치 tv가 없던 시절 라디오를 붙들며 낄낄거리는 느낌이다. 특히 김영하가 들려주는 책이야기가 내가 읽었던 책이며 같은 문장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았을때 받는 공감의 희열 !
특히 장 그르니에의 '섬'의 본문보다 뛰어난 카뮈의 서문을 들려줄때 김영하가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요즘 발견한 아이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목소리만 들으니 지하철에서 동영상보며 혼자웃는 우스운 꼴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Friday, June 17, 2011

정리

흩어져 있는 기록을 추려모으다.

2년 전,3년전..지난날의 기록을 돌아보니 나는 항상 고민하고 작게 방황하며
한편으론 감사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며 살았던 것 같다.
주요 키워드는 항상 '지금 이 순간'이었던 걸 보니.
(사실 난 어느영화로 유명해진 카르페디엠이란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현재를 사는것은 명백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기록이란 연필이나 펜으로 줄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애쓰며 종이 위에 쓰는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키보드를 감칠맛나게 두들기는 이 행위가 당연하게 기록으로 받아들여졌다.
언젠가 나의 아들딸이나 손주손녀에겐 손때묻은 종이일기장을 물려주리라는 바램은
꽤 많은 끈기를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항상 그 가죽일기장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위안한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기록의 회수가 줄어드는 걸 보니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보다.
생각도 글도 짧아진 느낌이다.세월이 흘러도 똑같은 양과 질의 감성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아,오늘밤은 참 좋다.
타닥타닥 쾌감을 주는 키보드로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며 정리하는 느낌.
마치 작가가 된 기분이다.

밤하늘에 달이 보였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어느늦은밤(2010.6.29)



<Christo and Jean Claude>
#
대지예술가라는 크리스토와 쟌 클로드 부부는 매우 닮아있다.
저 유쾌한 머리색과 순수한 웃음을 봐
어제부터 계속 그들이 센트럴파크에 세웠다는 저 펄럭이는 오렌지색이 머리속에 아른아른거렸다.딱 내가 좋아하는 오렌지색이다.
이 부부예술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아,겨우 기억난 단어'크리스토'..검색해보니 베니건스의 몬테크리스토만 잔뜩 나온다.
결국 찾아낸 이 부부,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지는 장대한 스케일의 예술!

#
잠에서 깼다.다시 잠을 청하려니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
태양은 나를 한없이 밝게만드고 달은 나를 한없이 차분하게 만든다.해와 달은 나에게 음양의 조화를 선사한다.달빛아래 차분한 이 밤,그리운 옛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싶은 그런 밤이다.

#
가만히 생각에 잠길때면 나는 언제나 혼자걸었던 어느 순간의 공기 한줌을 마신다.걷기도했고 뛰고있기도 했던 음악과 함께 혼자였던 그 순간,삶에 대한 외로움과 고마움을 내뱉었던 한숨과 선선한 공기,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있다.내 마음의 양분이 되는..

#
특히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수없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안개에 잠긴 새벽,바다보다 더 드넓은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그 항구.펠리칸보다 더 클것같은 오리새인가? 이 또한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는 새가 걸어다니는 갈대숲을 지났다.음악소리가 들린다.누군가 모래위에 앉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새벽이라그런지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꿈을 꾸는 듯하다.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바이올린,연주자의 뒷모습.나는 박수라도 쳐야할걸 그랬다.

어느순간_3호선에서(2010.6.23)

지금 지하철 3호선에 앉아 한강을 건너는 이 순간은 일년 전 5월의 어느 하루를 닮아있다.그날은 스승의 날이었던 것 같다.겉돌지 않는 담백한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내 귀엔 팻 매스니의 한 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담백한 만남의 여운을 음미하여 음악에 취해있었다.그날 일기장에는 훗날 나의 독자에게 그 음악을 꼭 들어볼 것을 권유하는 문장이 쓰여졌다.
순간의 기억은 이렇게 마음에 울려퍼졌던 음악과 함께 기억된다.청명한 밤하늘과 물위에서 반짝이던 빛때문이었을까,그밤이 유난히 떠오른다.오늘 이 순간을 종이 위에 풀어놓고 언젠가 이 하루를 또다시 떠오르겠지.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의 퍼레이드! 기억나지 않는다면 아마 지금 들리는 또 다른 이 음악 그 소년의 마들렌같은 기억의 매개체가 되어주겠지.
                                                        

무제,반성(2010.5.6)

많이 읽고,사색하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읽고 사색하고 쓴 것을 삶에 구체적인 생활에 녹여내는 일이다.
읽고 사색하고 쓰는 일은 개개인의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까워지는
노력의 과정일뿐 삶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참된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여도 그를 미화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또한 다독과 인격을 동일시 할 수 없는 이유이다.생각과 글과 행동의 괴리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글을 통해 나타난 미화된 글쓴이가 아닌 글을 통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려하는,이루고자하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나 또한 내가 끄적거린 문장들을 통해 본 '내가 바라는 나'와 '현실속에서 행동하는 나'의 심한 괴리를 느낄때 약간의 자괴감에 빠진다.거기다 난 아직 읽은 것도 생각한것도 쓴것도 부족하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2010.5.6)

하루키는 그의 단편집의 한 에세이에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에 대해 말한다.하루키의 '작지만 확고한 행복'은 장롱 속에 잘 접어둔 팬츠(?)였다.
그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고된 하루에 맞선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작지만 확고한 행복은 무엇일까?영화 아멜리에의 앞부분에 나온 아멜리에의 아빠,엄마에 대한 묘사가 생각난다.그녀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한다 등등을 재밌게 나열한..아멜리에의 엄마는 목욕할때 손발가락이 쭈글쭈글해지는 걸 싫어했다.

기운이 충만한 달을 올려다보는 것(반짝반짝 별도 좋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귀에 꽂고 동호대교를 건너는 지하철 안
(거기에 반짝이는 강 표면이 있다면 금상첨화)

운동화를 신고 땅 위에 붙어 어디든 달려갈 수 있을것같은 느낌
(구두에서 해방된 그 느낌이란!)

오늘은 이 세가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2009.9.19)

한동안 뜸했던 알랭드보통이 새 책을 들고 찾아왔다.
제목 또한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
"일의 기쁨과 슬픔"(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만약 일을 하기 전이었다면,
일은 철저히 이성적인 영역이라 생각하여 기쁨,슬픔이라는 감정의 상태로 표현하는게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기쁨과 슬픔이라는 표현은 내게 무척 와닿는다.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는 일에 어떠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버텨내긴 힘들다

어쨋든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파헤쳐보고 싶었다는,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일이,직업이,직장이 곧 한 사람의 인격이자 정체성이 되는 것에는
동조하고 싶지 않지만-직업이 한 인간의 정체성이 되기에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이 다양하다.)

알랭드보통은 비스켓공장,부두,직업상담소,화가,회계사 등 다양한 직업의 현장에서 글을 썼다.객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관찰자로서 일의 다양한 면모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내가 하고싶은 일은 무엇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보게 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우선은 목적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인내와 배움의 과정
그리고 힘들지만 없어선 안되는 것-어떤 친구의 표현을 빌려 필요악.

행복의 조건(2009.5.5)

애드가 앨런 포와 행복의 네가지 조건

1)야외의 생활
2)한 존재의 사랑
3)일체의 야망을 멀리하기
4)창조

<작가수첩1>,알베르카뮈 中

홍윤지와 행복의 네가지 조건

1)햇빛,바다,나무..자연이 있는 생활
2)한 존재의 사랑,나만의 Soulmate
3)최소한의 문화적욕구는 충족할 수 있는 욕심없는 삶
4)글쓰기,요리,공예 등을 통한 창의적인

김점선(2009.3.28)

작년 언젠가 광화문에서 김전선씨인 줄 알고 쫒아간 적이 있었다.
유쾌한 괴짜화가이자 작가 김전선씨.
언젠가 한번쯤 보고 싶었던 분이었는데..얼마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그림과 유쾌하고 낙관적인 글을
보며 존경해왔는데..

마지막 자서전을 보니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낙천적이었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암조차도 사랑한다. 내 삶의 궤적인 것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인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살 때도 매일 같이 수양하면서 담백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죽음도 삶의 마지막 부분일 뿐 삶과 동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저 초지일관해야한다"

무제(2009.3.10)

한두살씩 나이를 먹고 벌써 스물일곱이 되면서 나는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영향으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이십대후반의 여자라는 사실에 죄없는 죄책감을 느껴야하는 것 같다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여자에게 나이란 중요하다.적어도 이 사회에선 말이다.
이십대후반이 되고 삼십이 넘으면 여자로서의 가치를 잃을까하는 두려움,불안감 등은 사회의 분위기 탓,아니 '여자는 이십대만이 여자다'라는 사회의 진리아닌 진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해보면 개인의 탓도 상당할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의된다고하지만 자신을 한 인간으로서,여성으로서 본질을 들여다보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오직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춰지는 특정나이대의 여성으로서의 자기모습에 치중한 나머지 나이가 들면 소용없는 가치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영원한 젊음이란 없고 그의 말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잡으려하는 것과 같다

공평하게도 나이란 모든 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 현실에 가장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이 젊음의 순간을
즐기되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좀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어떻게하면 제대로 잘 늙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멋진 할머니 손자손녀에게 자랑스러운 할머니가 되려면 무얼 생각하고 무얼 해야할지를 말이다.

영원한 젊음은 없지만 영원한 가치는 있을테니 말이다.

어느 오후(2009.2.17)

나의 오후
점심을 먹고 나른한 몸을 이끌고 연구소로 향하는 택시 안
바깥공기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겨울이 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상기라도 시키려는듯 차다.찬바람이 불지만 하늘은 참 맑다.차라리 흐린하늘의 온풍보다는 추워도 맑은 파란색을 띤 하늘이 맘에 든다는 생각을 한다.창으로 들어오는 반짝거리는 햇빛이 정답다.맑은 공기와 맑은 하늘은 사람의 마음을 정답게 한다.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싶은 충동이 들지만 지루한 회의를
대비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귀로 흘러들어오는 제임스블런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감미롭다.

지난 어느겨울날 평일오후

나른한 평일오후의 햇살은 언제가 있었던 어느 평일오후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행하고 있는 평일 낮,
통의동 골목을 여유롭게 걸었다.겨울이었지만 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고 오후 햇살이 오히려 따스하게 감싸주었다.과거의 흔적을 담은
낡은 집들이 골목마다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었다.
'난 여기에 살고싶다.'
드문드문 보이는 카페는 세련되었지만 사람냄새를 풍긴다.정이 간다.청담동일대의 여느 트렌디한 카페들이 절대 가질수없는 느낌이다.
지나가다 우연히 헌책방을 발견한다.작은 책방에서 책냄새를 맡으며 구경한다.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르바이트생이 넘기는 책장소리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 뿐.매우 평온한 순간이다.
윤대녕의 소설 한권을 발견한다.거의 새책인데 이천삼백원이다.큰 수확을 한 기분이다.
심플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평일 오후의 카페엔 손님이 별로 없다.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주문한다.갈색 부직포로 손수만든
슬리브가 곱다.코코아는 적당히 달작지근하니 맛이 좋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소설에 빠져있는 사이 여러자리가 채워졌다 비워진다.코코아도 어느새 비워졌다.그리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간다.약속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토끼모양의 수제쵸코렛을 하나 사들고 해가지는 효자동을 뒤로하며 광화문 도심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꿈
작은꿈이란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언제가 있을 어느날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효자동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도서관이란
이름은 거창하겠고 개인책방이라고 할까.이왕이면 해변의카프카에 나오는 마을도서관정도의 규모였음 좋겠지만..최소한 민음사의 문학전집과사진이 멋진 요리책,아트북이 꽉차있는 책방의 주인이다.
산책나온 동네주민,광화문직장인들이 잠깐 들러 책도 일고 담소도 나눈다.내가 만든 밀크티와 쿠키를 맛본다.
책방은 조용하고 평온하지만 라디오와 음악소리가 책방의 공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책방에 앉아 가끔 손님을 맞으며 글을 쓴다.
세계여행한 이야기,지난날의 추억,사람,동물,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까지...맑은 햇살이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하여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리고 나의밤
세상은 생각보다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감정의 극대화는 부끄러울정도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세상은 나말고도 복잡하고 바쁜 곳이다.그래도 어쨌든 내안의 작은 방황들은 성장,아니 성숙의 양분이 되리라 믿는다.그래서 긍정적인 방황은 반갑다.
그분의 말대로 감정과 감성의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기도하다.
감성은 풍부하지만 차가운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는 감정과 감성이 별개인데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풍부한 감성보다는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싶다.
모두가 잠을 청하는 겨울밤,반짝거리는 도시의 불빛은 한강위에서 더욱 빛난다.인공적이지만 한낮의 햇살만큼 아름답다.
낮에 들었던 제임스블런트의 목소리가 더욱 감미롭다.

인간실격(2009.1.3)

작심삼일로 끝나는 첫해결심은 떠벌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새해 해야할 몇가지 일들을 머리속으로 우물우물 씹고만 있다가
개중 하나인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차도에서 날라오는 매연을 감수할 만큼 오늘의 밤거리는 상쾌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엔 매연처럼 뿌옇던 마음이 오히려 정화된 느낌이라할까.(동시에 매일 새벽 해안가를 뛰던 내 모습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걷고 뛰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미루어왔던 그러나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씩 생각해본다.
얼마전 읽었던 '인간실격'이라는 책제목이 머리속을 맴돈다.
운전면허시험장이 인간자격시험장이라면 나는 보도블럭을 넘어가는 어이없는 감점을 내지는 않더라도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별거아닌듯하지만 어쩌면 가장중요한 실수로 야금야금 점수를 깎아먹고
결국은 당신은 "실격"이라는 빨간도장을 쿵 받지는 않을까,
범죄자,알콜중독자와 같은 극단적인 실수를 하는 자만이 인간실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어쩌면 우리중 상당수가 인간실격인지도 모른다.나도 포함.어쩌면 다자이오사무는 자신이 인간실격임을 고백함을 동시에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 아닐까.
여전히 새해계획은 자기반성의 무기한연장으로 지연되어 맘에드는 다이어리에 거창하게 나열되지 못하고 머리속에 떠다니고 있다.
두시간동안 빌딩숲을 걷고 뛰며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이 끝나지 않는다. 그 끝에 새로운 진부한 결심하나.새해엔 인간이 되어보자.
적어도 넌 실격이야,도장 쿵은 면해야하지 않겠어,
적어도 글을쓰는 손이 부끄럽지는 않아야하지 않겠어,

공책(2008)

지금과 달리 초등학생 시절 나는 지나칠 정도로 공책 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글씨를 쓰다 볼펜똥이 묻었거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글자밖에 쓰지 않았더라도 종이를 북북 찢어버리곤 했는데
종이를 찢고 난 공책모서리 안은 들쑥날쑥 지저분해진다.
그럼 손으로 직접 뜯어보고 칼로 이리저리쑤셔보지만
종이는 너덜너덜 더 지저분해지며 상태가 악화된다.
결국엔 모서리의 올이 풀려 여러장이 한꺼번에 떨어져나가는데
겨우 몇 글자에 심각해져 공책 한권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패닉상태에 빠져드는데
초등학생에게 공책 한권은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생각하는
공책 한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물건이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공책 한권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여러번 그러다보면
모서리 안을 칼로 들쑤시며 억지로 공책을 깔끔하게 만들려고 할때
바로지금 그만두고 공책을 덮는게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공책에 손을 대며
결국엔 또 패닉상태에 빠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행복은 결국 나의 선택이고 마음가짐이란 걸
알면서도 공책을 덮어버리지 못하고 계속 칼로 상처를 내었다.

글씨 몇 글자 이쁘게 쓰여지지 않는 것은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혼란도 사실 그다지 심각한게 아닐텐데  모든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해져보는 건 어떨까.

단순함을 추구하지만 내 머리속은 항상 복잡하기만 하다.

아까운 공책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In Japan(2008)

난 지금 일본의 후지오카라는 시골마을에 안착했다.

시골은 누구에게나 고향의 느낌을 선사한다.
아마도 자연 안에서 느낄수 있는 안도감과 평온함때문이 아닐까.
자연은 나약한 인간을 품고
인간은 자연 안에서 모태와 같은 향수를 느낀다.

내 고향은 도회지만,무척이나 도시를 좋아하는 나지만
그동안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보다.
이 시골의 공기와 고요함이 여느때 보다 평온하게 느껴진다.

찜통과 같은 더위에 에어컨없는 마루바닥에 누워있지만
맥주와 약간의 와인, Damien rice,
그리고 지금 이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믿는
나의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소월길에서(2008)

그런 곳이 있다.

익숙한 곳도 아니고 자주 가본 적도 없지만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곳 말이다.

남산 소월길을 따라 쭉 걸어올라다가보면
후암동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그런 곳이다.

나도 모르게 털석 앉아 언덕길을 내려다본다.

양쪽에 곧게 서서 밤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이
언덕길에 낭만을 보태준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한아름 사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즐겁다.
목욕탕 바구니를 틀고 총총 걸어가는 아줌마의 표정이 귀엽다.
말 안듣는 강아지를 힘겹게 끌고가는 아가씨의 모습이 힘겹다.
'마라톤 *분*초에 완주목표'라는 종이를 등에 붙힌 할아버지의
뜀박질이 희망차다.
막 연애하기 시작한 듯 수줍은 대학생 남녀의 풍경이 풋풋하다.
막 남산을 정복하고 내려온듯한 아저씨의 걸음이 보람차다.

이렇게 사람들이 오고가는 언덕길을 바라보면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경자(2008)

                             탱고가 흐르는 황혼/천경자/1978

2007년 어느 봄날

미술관은 평일 낮에 가야 한산하다는 사실을 핑계삼아 
경제학수업을 까먹고 시립미술관에 갔다.

이름이 알려진 외국화가의 전시는 언제나 붐비더라,
역시 마그리트전은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로 붐볐다.

그림을 겨우 보고 엽서 몇장을 사는 쏠쏠한 재미를 맛본 후
카페로 걸어가다 천경자화백의 상설전시실을 우연히 들어갔다.

마티스와 고갱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이국적이고 원색적인 색채와
여성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름다움에 가슴에 진동이 울렸다.

해외여행이 흔치않던 시절 그녀가 여행했던 수많은 나라가
표시된 지도와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쓴 기행서적에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어쩌면 난 그녀와 같은 삶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박경리씨도 그녀에 대해 시를 썼더라

                                     <천경자>
                                  박경리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

...........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은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이다.


그 날 내게 영감을 준건 마그리트가 아닌 천경자화백이었다.



마음의 섬(2008)

2005년.내가 살던 곳에서 북쭉으로 쭉 올라가면
언덕 진 곳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Suntset hill park.
이름그대로 해가 지는 언덕이다.공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아
민망하지만 해가 지는 광경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가라 앉으며 펼쳐지는
정열적인 붉은 그라데이션의 노을은
오로지 자연만이 뽐낼수 있는 총천연의 색이이었다.

지고 있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충실히 의무를 다하고
건실한 하루를 끝내는 듯한 태양의 숭고함이 느껴졌다.
때가 되면 나타났다 때가 되면 질 줄 아는 한결같음..

언덕 밑으로 내려다보면 저 멀리 태평양으로 이어져
왠지 배만 타면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puget sound가 있었다.
그 끝없는 바다를 내려다볼때마다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물 위에는 수많은 작은 배들이 하루를 끝내고 돌아와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춘다. 고요함 속에서 차분히.
마치 저 세계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는 듯이.
멀리서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배의 행렬도
하나의 풍경이고 그림이었다.

나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혼자 그 곳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를 정리하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그곳에 데려가야지 생각했다.

한때 나만의 아지트이자 안식처였던 그 곳.
적어도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그러고 보니 사진 한장 찍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맘 한켠엔 Sunset hill이...  

그립다.

행복한 눈물(2008)


그대,행복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유난히 피곤한 아침, 늦잠을 자고
허겁지겁 서두르는 출근길이었다.

돈아까워 쓰라린 마음을 가다듬고 택시를 잡아 탄다.
'아저씨 꼭 빨리 가주세요'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아주 밝게 인사하는 아저씨는 대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보통의 택시아저씨들과는 조금 다르다.

'걱정마시고 제가 쓴 시 하나 읽어보세요'
시가 적힌 종이 가득한 봉투에서 한장 꺼내준다.

제목은 '행복한 눈물'

사랑하는 딸에게 어버이날에 받은 패랭이 꽃을 받고
가슴이 뭉클하여 행복한 눈물을 흘렸단다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니 놀라워
이렇게 적어 시를 썼다며 열심히 얘기하는 아저씨.

평소 뜬구름잡는 소리를 좋아하는 나지만
정시에 도착하지 못할까 불안한 나는
'누가 저런 사연하나 없겠어
휴..말많은 아저씨가 걸렸군'
하며 대강대강 들었다.
얼굴은 굳은채 눈으론 계속 시계만 쳐다보며.

근데 듣다보니 열심히 자기가 쓴 시에 대해 얘기하는 아저씨,
정말 행복해보였다.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출근길 교통에도
정말 행복해보였다.

가만히 들어보니 단순해 보이는 아저씨의 체험은
놀라운 것이었다.
행복해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나는 눈물이 그토록 많은 나는
행복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만한 일은 어쩌면 많았을지도 모른다.
알게모르게 우린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보내며 살고 있을테니깐
우리도모르게 스쳐보내며 살고있을테니깐

행복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분명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일거고
행복하게 사는게 뭔지 아는 사람일 거다.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아는 단순한
아니,어쩌면 가장 중요한게 뭔지 아는 지혜로운 사람..

86억에 구입한 '행복한 눈물'을 가진 그녀는
행복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을까

한 재벌총수의 부인이 비자금으로 구입한 '행복의 눈물'

그리고
택시아저씨가 딸에게 받은 꽃을 보고 흘린 '행복의 눈물'

'사랑하는 딸
어버이날에 선물로 패랭이 꽃 한분을 가져왔지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참 예쁘다 패랭이 꽃들,아 방실방실 웃고 있네
그런데 어느새 딸의 얼굴들이 되어 웃고 있으며
귀여운 딸들의 한 목소리로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세요
오래오래사세요 사랑해요 웃어대는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하여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며 눈물이 흐르는데
그때 내 마음의 느낌이 '행복한 눈물'하는 소리를 분명들었다
내가 행복한 눈물의 그림은 못 그려도 한번 글로 써 보려고 하다가
못 썼거든,참 신기하고 놀라운 그 날 체험한데로 이렇게 써 놓았다'
written by 택시아저씨

그대,행복의 눈물 흘려본 적 있나요

무제

 삶이 나를 습관적이고 고루한 지점으로 끌어가려할 때  나는 그걸 등지고 걸어가려 애쓴다.
 보이지 않는 불가항의 억센 공기를 뚫고.
 머리와 생각은 습관적인 습관에 발맞추어 줄지라도
 가슴과 영혼은 꿋꿋히 뒤돌아 걸어간다.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달,두번째

매일 밤 걸으며 혹은 뛰며 상념에 젖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땐 한강변이었는데,달빛아래 반짝거리는 강물은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켰다.
지금 걷는 냇가는 밤이면 안개가 잔뜩 껴 사물이 흐릿흐릿해보이는데 이 모습 또한 인상주의 화가의 평범한 풍경화같다.
오늘은 보름달이 떴다.
아니 아직 보름달이 되기 전이다. 바느질할때 쓰는 쵸크 모양의 달이다.정확한 원을 그리는 보름달보다 왠지 정감이 간다.어느 한쪽이 어눌하게 누그러진 모습이.
그 옆에 단 한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다.마치 집 뒷산에 사는 토끼 눈 옆에 있는 점같다.
달은 언제나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멀리서보면 저렇게 작지만 내가 어딜가든 달은 날 감싸주고 있다.좌우를 살펴도 한결같이 나를 비춰주고 있다. 차를 타고 가면 나를 따라온다.
지금쯤 이 지구 어딘선가 누군가 나처럼 달을 올려다보고 있을까?
공기에 물질뿐만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면
같은 시간 달을 올려다보며 동경하는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따뜻한 공감을 느낄텐데.
이렇게 안개낀 달밤아래서 걷다보면 세상의 온 감성이 나를 적셔버린 것같다.삶에 대한 모든 감정이 내게 녹아드는 것같다.낮이 되면 부끄러울지경의 감성에 빠져버리는 내 자신이 유치해보인다.
그렇지만 이성과 습관적인 생활로 가득찬 낮 시간에 이런 안개낀달밤으로 3분정도 바뀌는 시간이 있었음 좋겠단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한 초조함,지루함 습관적임,소시민적인 범인에서 벗어난 무위의 상태를 가능케 하는..

하루가 끝날 무렵, 매일 달 보기를 잊지 않는 이유는
달이 지닌 한결같음과 적당한 변화때문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위에 한결같음을 머금고
달은 그렇게 있다.

그러나 달은 안일함을 거부하고 조금씩 모습을 달리한다.
눈썹같은 초승달이 반달이 되고 거기에 살이 보태져
반원과 원 사이의 과도기를 거쳐 보름달이 된다.
그리고 그 충만함을 한껏 내뿜는다.

밤하늘의 외로운 섬,달.
해와는 다른 어둠과 신비로움을 담은 달.

누군가 말했듯이 달은 우리에게 영원히 미지의 영역이였으면.

달 바라보는 건 내 하루의 작지만 꽉 찬 충만함이다

나무


나무처럼 단순해지고싶다

계절에 꽃잎을 흘려보내고
묵묵히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추운바람이 볼을 스쳐도
이게 내가 흘려보내야할 바람이므로
무던히도 우직하게
그렇게 서 있는 나무이고 싶다.

나무는 심지어 그 바람의 차가움마저 사랑한다.

Wednesday, April 6, 2011


<전체주의의 기원>을 쓴 나치 연구가 한나 아렌트(1905~1975)는
그의 연인 하인리히와의 사랑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당신을 만났을 때 마침내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되었어요
여전히 나로서는 '큰 사랑'과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
이 두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고유한 자신을 갖게 되고부터 큰 사랑을 갖게 되었어요.
이제 나도 드디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 이 글을 읽고 내가 추구해야할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정체성,기쁨과 슬픔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건,진정한 사랑이라는건
끊임없는 배려와 포용을 감사한 마음으로 베푸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

2011년 4월 7일.  감사와 반성의 마음으로

오늘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라는 문장의 느낌이 좋아 기억했던 시
그리고 어디선가 보았던 사진속의 백석의 가지런한 인상이 기억에 남았던 시다.
(사실 미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사랑했던 여인 김영한의 스토리를 알고나니 마음을 울린다.
평생 한 사람만을 그리워한 연인.
'소유하지 못한 사랑,집착하지 않은 인생'이라는 어느 작가의 표현이 와닿는다.


순수한 사랑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요즘 세상.이런 사랑이야기는 가슴을 더 먹먹하게 만든다.


비가 그치면,길상사에 가보고 싶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Monday, March 21, 2011

me

지하철에서 아무생각없이 몸을 기대며 집에 가는길
아무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떠나가고  어떤 기분덩어리가 내게 오는걸 감지했다.
허무함,의욕이 사라진.
그렇다고 내가 평소에 힘없이 목적없이 대충 살아가는 그런 우울한 인간은 아닌데..
그런데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허무함이 있다.당해낼 수 없는.
아 그렇다..내게 여유가 생긴 것이다.시간적,육체적인 빠듯함에서 벗어난 정신적 여유.
또 다시 본질에 대해 맞서는 유치한 진지함이 생긴 것이다.

절대적 자아에 대한 신념.내게 그것은 세상 그리고 사람과 관계하는 태도,행복,삶의 의미 그런 것들과
긴밀하게 엮여있다.이십대 초반 나는 절대적인 자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수많은 자아와 영혼속에서 오로지 하나인,절대불변적인 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때로 유치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했고 한편으론 본질에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었다.
모든것에는 양면성이 있으니 나는 그 시절을 달게 생각한다.

내겐 절대적 자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환경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굳은 알맹이.
그것은 관계에 대한 태도에도 드러났다.관계 또한 하나의 절대적인 자아와 또 하나의 절대적인 자아의
만남이어야 하고,상황이나 조건에 따른 인간의 관계는 100%가 아니라는 결벽성.(그건 덜 정성스러운 태도와 무심함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아와 자아의,영혼과 영혼의 불변한 만남.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인간관계였다.
서서히 그게 힘들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어쩌면 그러한 관계는 사람과 신 사이에서만 가능할거란 생각이 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이다.그걸 통해 어느정도
'나 다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타인을 볼 때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생각한다.
이또한 작위적이거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최소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안다면 한 사람이 추구하는 자화상을 알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나다움'이 뭔지를 알거고 삶의 과제인 자아를 찾아가는 길에 한발짝 더 나아가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돌아가서...나는 누구인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일정하게 규정되고 그래서 다른 것들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불변적인 단위'가 아닌
감각의 덩어리일 뿐일까.환경에 지배받고 상황에 따라 울고 웃을 수 밖에 없는..?

Monday, February 21, 2011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

유난히 햇빛이 화사한 봄날이었다.
소민이와 나는 공강시간을 틈타 신세계백화점 옥상에 놀러왔다.
나무로 파라솔 테이블 위에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놓고
이어폰을 꽂고 햇빛을 만끽하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하나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날이었다. 
그리고 즐거운 대화.

낭만적인 만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와 같은.

우리는 서로 다짐한다.젊음이 가기 전에
하루키의 단편이 적혀진 고이접은 하얀 쪽지를 건넬 수 있을만큼
100%인 사람과 낭만적인 만남을 이루자고.
100%라고 느낄때 주저없이 그 쪽지를 건네주자고.

유치하지만 그시절 여대생이 꿈꿀만했던 순간이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살에 가까울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쁜 여자아이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식사하는 여자아이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 식의. 나에게도 몰론 그런 기호는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의 코 모양에 반해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유형화 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그녀의 코가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코가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 뿐이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미인이었어?" 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구."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을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야."
"하긴 뭘 해. 그러 엇갈렸을 뿐이야."


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어딘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디 알렌의 영화라도 보며, 호텔 바에 들러 칵테일이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 뒤에 그녀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벌서15미터 가량으로 좁혀졌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단 30분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보험 권유같지 않을까.


"미안합니다. 이 근처에 혹시 24시간 영업 세탁소가 없는지요?"
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손에 세탁물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누가 그런 대사를 신용하겠는가?

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입니다."
아니, 틀렸어. 그녀는 아마도 이런 대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믿어준다 해도, 그녀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퍼센트의 남자는 아닌걸요, 죄송하지만" 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 쇼크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서른 두 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꽃가게 앞에서, 나는 그녀와 엇갈리게 된다. 따스하고 조그만한 공기덩어리가 피부에 와 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언저리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풍기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흰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아직 우표를 붙이지 않은 흰 사각 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녀의 눈이 졸린 듯한 것으로 봐서, 어쩌면 하룻밤동안 그것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각 봉투 속에는 그녀에 관한 비밀이 전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대사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야" 하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되는 의구심이 파고 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 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의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주일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H.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 두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집

YJ & GS

                                                           

Sunday, February 20, 2011

효자동의 오후

여유가 무척이나 그리울 땐,반차를 내고 효자동으로 걸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효자동의 오후 풍경들.
 햇빛 든 골목. 효자동에 살고싶다.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고희'앞에 자리한 집..알고보니 무속인의 집인듯
문학적인 메밀집 이름. 여기한번 가보고싶다.